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창작]
봇치가 기타 못 치게 되는 SS
낙타성애자
2025-02-05 19:12:32
조회 118
추천 12
처음은 동경이었다. 고토 히토리는 그저 '동경'의 감정으로 기타를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의 기타는 더 이상 동경이라던가 하는 정도의 실력으로만 퉁치기에는 굉장히 화려하고 숙달된 소리를 내기 일쑤였다. 이러한 연주에 도달하기까지 그녀의 노력은, 그녀 인생의 정말 많은 부분을 바쳤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매일 6시간. 그녀는 비록 결속밴드에 들어가서 리드 기타를 맡게 되었음에도,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제 기타는 그녀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고토 히토리는 잠에서 일어나 자신의 찌뿌둥한 신체를 움직이자마자 자신의 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가 그녀의 머릿속 어떠한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고 지나간 흔적이 자꾸 남은것만 같았다. 어쨌든 그녀에게 그것은 그닥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늘 아침도 서툴지만 느리지는 않게 이불을 갤 것이고, 아직 잠이 다 깨지 않은 몸을 이끌며 아침을 먹은 후, 목욕재개를 한 뒤 옷을 차려입고 학교로, 스태리로 향할 것이다. 이제는 이것이 그녀의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자신의 방 한 켠에 놓여있는 자신의 기타를 보면서 느낀 기시감이 어째 마음에 걸리는 듯 하였다.
오늘의 알바는 평소보다 훨씬 더 바빴다. 오늘은 스태리에 다른 지역에서 유명한 밴드가 시모키타자와에 공연을 왔기 때문에, 고토 히토리를 비롯한 결속밴드의 멤버들은 오늘은 결속 밴드의 연습은 고사하고 정시 퇴근마저 못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와중에 야마다 료는 언제부터인가 자리를 비웠지만.) 그렇기에, 고토 히토리가 스스로가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 다음날의 일이었다.
"어, 어라... 이상하다...?"
자신의 기억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지금까지 벽장 안에서 수없이 기타를 치던 순간들과 결속밴드에서 밴드의 일원으로서 기타를 잡던 그 모든 순간들이 고토 히토리의 머릿속에서는 생생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느껴지는 이질감은 그녀를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손과 팔에 기타의 몸체가 닿는 감각부터, 퀴퀴하고 병든 쇠냄새를 풍기는 여섯개의 줄에 손가락이 닿는 감각까지. 모든것이 어색했다.
그녀는 자신이 기타를 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명 그녀의 머리는 알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마음이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는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어떤 식으로 기타를 쳐야 하는지, 자신의 손가락이 어떤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과 손목을 억지로 움직였다. 하지만 마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듯, 마치 다른 사람의 몸을 조종하는 것 같이, 그녀의 몸은 그러한 기억에 대해 연고가 없다는 듯 행동했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고토 히토리는 생각했다.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된 것도 물론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 바로 결속밴드였다. 고토 히토리는 기타만으로 결속밴드에 들어갔기에,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멤버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이 있을 곳 역시 없어질것이다. 그러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아침에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주 나쁜 독감에 걸렸다고 핑계를 댈 수 있을테니까. 그 점만은 정말로 다행이었다.
"...헤에, 요즘 독감 유행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는데."
"네에... 콜록, 니지카 씨, 죄송해요..."
"신경쓰지 마! 봇치 짱, 꽤나 연약한 편이구. 언니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그러면, 연습 나오는것도 좀 힘들겠네?"
"아무래도 그럴 거 같아요... 콜록콜록."
"응응! 다른 거 신경쓰지 말고 몸조리에 신경 써, 알겠지? 몸 나아지면 연락해 줘~!"
"에... 가,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뒤 죄악감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떠나지 않았다. 원래도 거짓말같은 걸 제대로 치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그것이 더욱 무겁게만 느껴졌다. 전화 너머로 느껴지는 니지카의 목소리는 자신을 진심으로 신경 써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은 그 관심도, 그 기대도 전부 배신해버린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고토 히토리는 하루종일 기타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여전히 드는 이질감은 그녀의 몸을 떠나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이 기타를 치지 못하게 되었는가는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토 히토리의 안에서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하루빨리 기타 실력을 되찾아 결속밴드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연한 소리지만 그녀의 기타 실력이 사흘만에 늘어나는 일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똑같은 거짓말로 부모님을 속이지는 못했기에 학교를 결석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기타 실력을 되찾는데에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한 편, 키타 이쿠요 역시 스태리에 계속해서 나오는 고토 히토리를 걱정하는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그녀는 고토 히토리의 반에 몇번이고 찾아갔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자리에는 그녀의 가방만이 있었고, 고토 히토리는 그녀의 학급에서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녀를 찾아다니려 학교를 잔뜩 들쑤시고 다녔겠지만, 무언가 봇치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던 그녀는 일부러 고토 히토리를 찾지 않았다.
"키타, 너 요즘 2반에 자꾸 찾아가던데. 무슨 일 있어?"
"아, 응. 너네 2반의 히토리 짱 알아? 요새 도통 보이질 않아서."
"아, 문화제 때 다이빙했던 그 아이 말이야? 되게 재밌었지이."
"너희는 혹시 아는거 없어?"
"그러고보니 2반 친구한테 들었는데, 요새 그 아이가 쉬는시간이나 점심시간만 되면 어딘가로 서둘러서 간대. 뭔가를 피하고 싶다는 듯이."
"헤에..."
키타 이쿠요는 생각했다. 고토 히토리가 자신을 피하고 있는건가? 하지만 딱히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신을 피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지 그녀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치만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 이대로만은 무언가 안 된다는 사실 뿐이었다. 무언가 곤란한 일에 처해있다면, 자신이 도와줘야한다. 키타 이쿠요가 이렇게 생각한 바로 그 날, 정말 우연찮게도 밴드의 연습 중 니지카와 료가 고토 히토리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요즘 봇치, 안 보이네."
"그러게요. 히토리 짱, 학교는 제대로 나오기도 하고, 잠깐 봤는데 그렇게까지 심각한 정도는 아닌 거 같긴 했는데요."
"봇치 짱, 사실은 아프지 않다거나, 그런걸까? 하지만 그러면, 왜 스태리에만 안 오는걸까?"
"무언가 위험한 일에 휘말린 것만은 아니면 좋겠는데요."
"위험한 일이라... 예를들면, 세이카 씨한테 거금을 빌리고 잠수탔다던가?"
"아, 응. 료가 안 보이면 그런 이유라고 생각할게."
"뭐, 걱정해봤자 별 수 없잖아? 내일 주말이니까, 병문안 느낌으로 한 번 가보자."
"아... 저 내일은 약속이 있긴 한데..."
"그러면 료랑 나랑 둘이서 다녀올게. 료는 내일 일정 없지?"
"무리야. 내일은 식량 조달을 위해 이 일대의 모든 풀을ㅡ"
"없다는 걸로 알게?"
그렇게 료와 니지카가 찾아가기로 한 다음 날 역시, 고토 히토리는 여전히 기타를 미친듯이 연주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실력은 기타를 일주일 배운 꼬맹이만도 못했다. 얼마나 열중하고 있었으면, 료와 니지카가 병문안을 온다면서 보낸 문자도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생각해보면, 고토 히토리는 요 며칠간 핸드폰을 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다. 그것은 확실한 회피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들이 자신의 집을 방문했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상당히 당황했다.
"어, 어째서... 어째서 니지카 씨 네가 찾아온거지...?"
고토 히토리는 생각했다. 분명 자신의 거짓말이 들통난 게 분명하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따지러 온 것이다. 고토 히토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허둥지둥 기타를 정리하고 아픈 척을 하기 위해 개놓았던 이불을 다시 핀 뒤, 그것을 덮고 병자처럼 누워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래층에서는 봇치의 어머니가 니지카와 료에게 과자를 대접하고 있었다.
"뭔가 위층이 소란스럽네. 저 아이, 친구들이 왔다는데 내려오지는 않고 뭐하는건지, 참."
"저번에도 살짝 보기는 했었는데, 이 바로 위층이 봇치 짱의 방인가요?"
"응응, 요새 학교가 아니면 방에서 잘 나오지를 않긴 한데 말이지. 무슨 일 있었던거니?"
"아, 저희는 병뮨안으로ㅡ"
"봇치 짱한테 빌린 돈을 갚으러 왔어요."
"자, 잠깐, 료?!"
니지카는 자신의 입을 막으면서까지 되도 않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하는 료를 보면서 기가 막혔지만, 어딘가 의미심장한 료의 표정을 보고 일단은 그 거짓말에 맞춰주기로 했다.
"아, 맞아요! 료가 말이죠, 봇치한테 돈을 빌렸으면서 하도 안 갚길래. 제가 멱살 잡고 끌고 왔어요."
"아, 난 또. 그런거였니? 후후. 분명 저 아이, 친구한테 돈 갚아달라고 말하기가 껄끄러워서 계속 말을 안 하고 있었던거지? 그거 때문에 살짝 고민이 많았나보네."
"아, 아하하하... 그런 셈이죠."
니지카는 어색하게 웃었고, 료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니지카는 속으로 '아니, 지금 이 부분 너가 찔려야 할 부분이거든' 이라고 내심 생각했다.
"그나저나, 저 아이 도통 내려오질 않네. 소란도 잦아들었고, 미안하지만 직접 올라가보겠니?"
"신경쓰지 마세요! 봇치 짱 방은 한 번 가봤으니까, 괜찮아요."
"난 와본 적 없는데."
"내가 알려주면 되잖아. 자, 올라가자."
봇치의 어머니께 살짝 목례를 하고, 니지카는 료의 손목을 끌고 계단을 올랐다. 봇치의 방에는 명패가 걸려있기에, 처음 와보는 료라도 봇치의 방이 어딘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니지카로써는 어째서 료가 평소보다 더 늘어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지금 해야하는 것을 할 뿐이었다. 니지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봇치의 방 문을 똑똑 두드렸다.
"저기, 봇치 짱. 우리 왔는데, 들어가도 돼?"
"아... 네, 네... 문 열려 있어요..."
니지카와 료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안에는 고토 히토리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있었다. 니지카는 병문안 선물을 살포시 내려놓으면서 봇치와 거리를 두고 살짝 앉았다.
"봇치 짱, 괜찮아? 며칠째 통 소식이 안 들려서 걱정돼서 와봤어."
"아, 일부러 감사합니다... 콜록, 콜록..."
"몸상태는 좀 어때? 괜찮아?"
"으으... 아직도 좀... 죄송해요..."
"그래... 랄까, 료. 그렇게 멀뚱멀뚱 서서 뭐하는거야?"
"...."
료는 대답 대신, 니지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방 내부를 슥 둘러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관찰하는듯한 행동을 하는 료를 이해하지 못하고 니지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료의 시선은 방 벅지를 훑으면서, 방에 있는 물건 하나하나를 눈동자에 담듯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봇치와 이야기하고 있는 니지카의 어깨를 잡으면서 말했다.
"니지카. 나 똥마려."
"아, 화장실? 내려가서 쭉 가면..."
"그게 아니고, 휴지가 없어."
"뭐야, 료 이 집 와서 화장실 가본 적도 없잖아? 어떻게 알아?"
"아니아니, 요즘 웰빙스러운 생활을 추구하고 있어서 말이지. 길거리에 나 있는 풀의 나뭇잎이 아니면ㅡ"
"알았어, 알았어. 집 앞에 있는 풀 몇개 뜯어오면 되지? 봇치 짱, 미안해?"
"아, 다, 다녀오세요..."
니지카는 료를 살짝 쏘아보면서 (입모양을 보니 욕 같았다.) 봇치의 방을 나갔다. 이제 이 방에는 봇치와 료 둘만이 남아있었다. 니지카가 방을 나가자마자, 료는 방 문을 닫고 주저앉아 봇치에게 입을 열었다.
"봇치, 방금까지 기타 연습 했어? 그것도 꽤 많이."
"아, 그게..."
"얼른 말해."
"네, 네... 했어요."
"그래? 독감걸린 사람 치고는 꽤 활발하네."
"아, 아니... 그건 그런게 아니라..."
"봇치, 손."
"....아,"
봇치가 무언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료는 봇치의 옆으로 와서 그녀의 왼쪽 손바닥을, 정확히는 왼쪽 손가락들을 보았다. 그것이 기타에 숙련된 사람의 손이 아니라는 것을 료는 단박에 눈치챌 수 있었다.
"....봇치, 어떻게 된거야? 왜..."
"그만...!!"
료는 순간, 봇치가 자신의 몸을 두 손으로 붙잡은 것을 눈치챘다. 딱히 저항이야 하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사시나무 떨 듯,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듯 벌벌 떠는 그녀를 보고 이상하게는 느꼈다. 그녀의 다음 말이 이어지고 그 이유를 알았지만.
"제발... 말하지 말하주세요... 니지카 씨에게는..."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게... 믿기실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부터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어서..."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었다고...? 그럴 수가 있는거야?"
"저도... 저도 모르겠단 말이에요...! 갑자기... 기타를 잡는게 굉장히 어색하고... 괴리감이 드는게..."
"선뜻 믿기지는 않는데. 진짜야?"
"지, 진짜에요... 진짜... 제, 제발 니지카 씨에게만은..."
그 때, 니지카가 풀잎을 잔뜩 들고 방 안에 들어왔다. 니지카는 자신의 눈앞에 처한 상황을 선뜻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아까 전까지 끙끙앓던 봇치가 료 앞에서 벌벌 떨면서 그녀의 하반신을 잡고 있으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료, 료...? 이게 무슨..."
"니, 니지카 씨..."
료는 봇치를 살짝 흘겨보고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서 니지카에게 말했다.
"봇치, 기타를 칠 수 없게 됐대."
"에...?
"료, 료 씨...!!"
"어차피 지금 숨긴다고 해도, 언젠가는 들통날거잖아. 미리 밝혀두는게 낫지."
"우, 우우우우...."
"...에, 에...? 그게 무슨 소리야? 기타를 못 치게 되었다니...?"
"그러니까, 봇치 짱, 왜인진 모르겠지만 며칠 전 부터 못 치게 됐대."
고토 히토리는 떨린 눈으로 니지카와 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료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고, 니지카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이미 그녀는 료의 바짓가랑이를 잡고있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무언가 휑한 눈빛으로 둘을 쳐다볼 뿐이었다. 기타를 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니지카에게 들켜버렸다. 그것 때문에 거짓말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들킬 것이고, 자신은 곧 버려질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녀의 몸을 서서히 적시고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것이 그녀의 몸을 몽땅 적실 때 쯤 니지카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 봇치 짱! 난 또 심각한 일에 휘말린 줄 알았잖아.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
니지카의 반응은 고토 히토리의 반응을 한참 비껴나갔다. 그녀의 말은 잔혹할정도로 상냥하고 따스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고토 히토리에게는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듯 했다. 고토 히토리가 그 말을 듣고 느낀것은 안도의 감정이 아니었다. 감사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그 말이 자신을 내치는 어떠한 선언으로 느껴진것만 같았다. 니지카는 이미 자신을 포기했다고 느껴버린 것이다. 료가 니지카에게 서둘러 일러바친 이유도 분명 그런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말라고요..."
"봇치 짱?"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요!!!"
고토 히토리의 격해지는 감정에 니지카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자신이 무언가 해선 안 되는 말을 해버린걸까? 그런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고토 히토리는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를 쏟아냈다.
"그딴식으로 말해봤자 저한테 도움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어차피 저는 기타치는 거 말고 모두에게 도움따위 되지 않는다구요...!! 기타실력이 없는 저 따위, 여러분들한테는 필요 없는거잖아요!!"
"보, 봇치 짱...? 왜 그래?"
"저라고 노력을 안 해봤는줄 알아요?! 미친듯이 기타를 치고, 손가락을 움직이고, 벤딩을 했다고요!! 그런데, 그런데도 방법이 없다고요!! 애당초, 심각한 일이라니... 이것보다 심각한 일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 그렇게 뭐든지 다 안다는 듯 말하는거, 기분 나쁘다고요!! 저한테 동정같은거, 하지 말아줄래요?! 저는... 저는...!!"
고토 히토리의 날선 말들은, 니지카의 울먹거리는 눈빛을 보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역겨운 음식을 먹은 듯이, 마구잡이로 분노를 토해낸 고토 히토리의 흥분한 숨소리만이 이 작은 방의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야마다 료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심히 말했다.
"봇치, 아무도 널 버린다고는 안 했어."
"그런거나 마찬가지라고요. 기타도 못 치는 기타리스트, 둬봤자 뭐할건데요?"
"..."
야마다 료는 그 말에 침묵했다. 그것은 동의도 아니었지만, 부정도 아니었다. 봇치의 떨리는 목소리, 절박한 눈빛이 잠깐 마음 한켠을 건드렸지만, 그 감정을 붙잡기에는 너무 서툴렀다. 위로의 말은 어딘가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동정은 오히려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 봇치의 앞에서는, 가식적인 자신으로 있고싶지 않았다. 그런 그녀와 다르게 이지치 니지카는 충격을 먹은 듯한 행세였지만, 곧 그 당황스러움을 숨기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봇치 짱한테 상처를 준 거 같나보네. 그렇지만... 난 진심으로..."
니지카는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그 눈에서 살짝 눈물이 고여있던 것을 한 순간 보았을 때, 고토 히토리는 바로 그 때 무너져 버린걸지도 모른다. 니지카가 뛰쳐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야마다 료는 방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고토 히토리는 추레하게 쳐져서는 료를 쏘아붙혔다.
"...어째서, 아무말도 안 해주는건데요."
"이건 봇치가 결정할 일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난 봇치가 아니니까."
"...꺼져주세요. 료 씨."
료는 그 말에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토 히토리의 방 문을 닫고 그대로 집 밖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고토 히토리는, 조용히 방 구석에 웅크렸다. 그것은 기타를 지기 전 자신의 한심한 행색과 같았다.
"...차라리 화를 내달라고요... 니지카 씨... 료 씨..."
그러나 대답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핸드폰의 푸시 알림음 하나만이 그 침묵을 잠시 찢을 뿐이었다.
한편 키타 이쿠요는,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끝났기에 아직 고토 히토리의 집에 가지 않았으면 니지카와 료와 합류하기 위해서 스태리로 향했다. 그러나 스태리에 들어서기 전 공원에서 이지치 니지카와 야마다 료의 모습을 보았다. 어딘가 고민이 많아보이는 선배들의 모습은, 곧 키타로서 하여금 병문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론해내기 쉬웠다.
"선배들, 여기서 뭐해요?"
"아, 키타 짱..."
"봇치의 집에 다녀왔어. 니지카는 지금 센시티브한 상태니까, 말 걸지 않는게 좋아."
"센시... 뭐요? 아무튼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그게 말이지..."
료는 키타에게 모든 일을 설명해주었다. 병문안에서 있었던 표면적인 일을 포함해서, 고토 히토리가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전해주었다. 키타 이쿠요는 자신에게 기타를 가르쳐주었던 그 고토 히토리가 기타를 칠 수 없게 되었단 사실만은 충격을 먹었지만, 그 뿐이었다. 기타를 치지 못하는 것도, 니지카에게 소리를 친 것도, 그녀를 싫어할 이유가 되진 못했다. 오히려 키타 이쿠요의 심장은 어딘가 요동쳤다.
"...히토리 짱을 도울 방법이... 분명 있을거에요! 저, 히토리 짱한테 가볼게요!"
"키타 짱… 지금은 봇치 짱을 그냥 두는 게 나을지도 몰라. 나도… 뭔가 잘못한 것 같아서… 더 상처 줄까봐 무서워."
"니지카 말이 맞아. 지금 봇치는 냉정한 상태가 아니야. 누가 뭐라 해도 스스로 무너질거야."
"...그럴지도 몰라요. 하지만..."
키타는 료와 니지카를 보면서 말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고토 히토리에게 향해야 하는 이유를 그녀는 확실하게 말했다.
"히토리 짱은 저를 구원해주었어요. 선배들 앞에서 한 번 도망친 저를 선배들에게 데려다 주었어요. 히토리 짱은 저한테 알려준거에요. 한 번 도망친 인간이라도, 거짓말을 한 인간이라도, 그런 나를 받아들여주는 사람들도 있단걸요."
"키타 짱..."
"이번에는, 제가 그걸 알려주고 싶어요."
그렇게 키타는 마음을 굳게 먹고, 고토 히토리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나 고민은 없었다. 물론 두려움이야 살짝 있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는 것을 그만 두었다. 키타 이쿠요는 생각한다. 결속 밴드에서 도피한 그 날을 생각한다. 그녀는 마음 어디선가 응어리와 불안감이 있었지만, 그것을 회피하기 바빴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인간이 되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자신을 구원해 준 고토 히토리를, 자신만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을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한 발걸음을, 그녀는 하고 있었다.
해가 수평선에 걸치는 저녁 무렵, 키타 이쿠요는 고토 히토리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딘가 곤란한 듯 문을 열어주었지만, 키타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그녀의 방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방 문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두드렸다.
"...히토리 짱, 나 키타야. 들어갈게?"
"..."
문은 열려있었다. 고토 히토리는 니지카 일행과 헤어진 뒤 그 자세 그대로 방구석에 있었다. 방 문이 열리고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리고 그 인기척이 키타 이쿠요라는 것을 깨닫자, 봇치는 날선 말로 그녀를 맞이했다.
"...왜 왔어요...? 키타 씨. 모두한테 이야기 못 들었어요?"
"응. 들었어."
"그럼 제가 니지카 씨한테 소리친것도 아시겠네요. 전 어차피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에요. 키타 씨 같은 분은 이해 못 하겠지만."
"..."
"왜요? 어차피 키타 씨는 기타를 못 쳐도 같이 있어주는 친구들이 있잖아요? 반쯤은 음악에 진지한거 같지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기타를 배우는 키타 씨야 말로, 절대로 절 이해할 수 없잖아요. 그래요. 저 같은거, 그냥 내버려두면ㅡ"
"아니야."
"...네?"
키타는 침을 꼴깍, 목구멍 너머로 밀어넣듯 삼켰다. 그리고 방 문을 닫고, 봇치의 앞에 똑바로 서서 입을 열었다.
"내가 기타를 배우는 이유는, 히토리 짱 때문이었어."
"...?"
"알잖아? 나도 기타를 못 치는 상태에서 결속밴드에 들어갔어. 그게 탄로날 거 같아 나는 밴드에서 도망쳤고. 그런 나를 이끌어주고, 함께 들어가준게 히토리 짱이잖아?"
"저, 저는 그런 일은..."
"그때부터 내가 히토리 짱한테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알기나 해? 선배들하고 화해시켜 준 것도... 기타를 가르쳐 준 것도... 망칠뻔한 첫 무대를 살려준 것도 있지만... 히토리 짱은, 나한테 여기 있어도 된다고. 알려줬잖아?"
"그만해요...."
"히토리 짱은 나한테 결속 밴드에 있을 이유를 만들어 줬어. 그리고, 히토리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ㅡ"
"그만 하라고요!!! 그딴거... 그딴거, 다 가식이잖아요!!!"
고토 히토리는 이전처럼 분노를 표출하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이렇게 하면, 니지카와 료처럼 키타 또한 자신을 포기할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키타 이쿠요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고토 히토리가 뭐라고 하려하기 전에, 키타 이쿠요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녀에게 꿀리지 않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뭐야? 히토리 짱한테 품고있는 이 감정은 뭐냐고!!"
"키, 키타 씨...?"
"그거 알아? 언젠가부터 나 있지, 히토리 짱만 보고 있다고. 히토리 짱이 기타를 치는 모습도 멋있고, 나한테 기타를 알려줄때는 상냥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모습도 안쓰럽지만 사랑스럽고,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할 때는 귀여워 죽을거 같고...!! 언젠가부터, 히토리 짱이 내가 결속밴드에 있는 이유가 되어버렸다고!!"
"아, 그... 그런.... 저, 저 따위를 키타 씨가 좋아할리가..."
"이래도 못 믿겠으면 알려줄게. 싫으면 때려도 돼."
키타 이쿠요는 그대로 고토 히토리의 손을 붙잡고, 입을 살며시 맞추었다. 고토 히토리는 처음에 경계했다. 하지만, 키타 이쿠요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입술은 이것이 자신을 상처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동시에 그 입술에서는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하지만 키타 이쿠요는, 고토 히토리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한동안 가만히 대고 있었다. 그 입술에서는 수줍음 이상으로,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아무리 사랑과 관심에 둔감한 고토 히토리라도, 그것을 깨닫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때, 이래도 가식이야?"
"...그치만... 기타를 못 치게 된 저 따위..."
"기타를 못 치게 됐다면 알려줄게. 당연히 원래 히토리짱 만큼 기타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히토리짱 덕분에 나도 노래 부르면서 기타치는 정도까지는 할 수 있거든? 히토리짱이 버려질 거 같으면 내가 꼭 붙잡고 안 놓아줄게. 나, 이래뵈도 집착하는 거 하나만큼은 자신 있거든"
"그, 그게...."
"히토리 짱은 조금 더, 스스로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필요가 있어. 기타는 그 나중 문제야. 밴드는 악기가 다가 아니잖아?"
"정말... 이런 저도... 지금의 저도... 사랑같은 걸 받아도 되는거에요...?"
"당연하지. 히토리 짱은 항상 사랑스러웠는걸."
"...키타 씨... 잠깐..."
"응, 이리 와."
고토 히토리는 키타 이쿠요의 품에 살짝 안겼다. 잠시 후, 고토 히토리의 방은 그녀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그녀는 키타 이쿠요의 치마에 눈물 자국이 스며들 정도로 서럽게 울었다. 그것은, 비단 눈물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감정을 모두 쏟아내는것만 같았다. 키타 이쿠요는 그런 고토 히토리의 고뇌와 우울, 외로움을 모두 알았기에, 그녀를 쓰다듬어주면서 토닥여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울음소리가 멈추었을 때도 토닥이는 걸 멈추지는 않았지만, 어째선지 좀처럼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않는 고토 히토리를 보면서 의구심을 가졌다.
"...저, 저기, 히토리 짱...?"
"...키타씨의 냄새..."
"무슨 소릴 하는거야!!"
키타는 무의식중에 봇치를 밀어냈다. 봇치도 밀쳐진 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서야 깨달은 듯 보였다.
"미, 미안해! 히토리 짱. 안 다쳤어?"
"아, 아하하하... 그렇죠, 감히 저 같은게, 키타 씨의 치마 위에서 그렇게... 분명, 변태라고 생각되었겠죠, 저..."
"...정말, 아무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토 히토리는 여전히 자기혐오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방금 전 까지의 자기혐오와는 달랐다. 마치 예전의 그녀로 돌아온 것만 같은, 조금 마음이 놓이는 자기혐오(?)였다.
"그, 그러고보니 히토리짱...! 그래서 결국... 우리... 사귀는거야?"
"에, 뭐, 그, 그렇습죠. 예. 키타 씨가 사귀고 싶다고 하면 미천한 저일지라도 모쪼록..."
"아니...! 그런게 아니고, 히토리 짱의 진심을 알려줘...!"
"저, 정말요...?"
"...응. 난 각오 되어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고토 히토리는 간절하게 빈 뒤에, 키타 이쿠요의 입에 긴장된 듯, 그러나 자신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빌면서 입을 맞췄다.
고토 히토리는 여전히 기타를 완벽히 연주할 수는 없었지만, 더 이상 손가락 끝의 둔감함이나 어색함이 그녀를 압도하지 않았다. 손끝의 감각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더 이상 그 사실에 짓눌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타를 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믿어주고, 아껴주는 동료들이 있음을, 그리고 자신을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그녀'가 있음을, 고토 히토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