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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봇제비) 살아남기 위해 (上)

ㅇㅇ(218.232)
2025-02-19 12:37:27
조회 157
추천 10

나는 인간들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우리 봇제비와 동물들이 인간들의 삶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로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거나 폭력을 가했고, 또 보양식으로 좋다고 알려진 탓에 인간들이 우릴 식재료로 써서 잡아먹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원해서 인간세상에 온 게 아니다.

도시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것도, 숲에서 평화롭게 살지 못한 것도 다 인간들 때문이었으니 말이다.

우린 대체 왜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








도시에 유기되기 전, 제비숲의 평범한 자연환경에서 봇제비로 태어난 나와 형제들은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중 첫째였던 나는 엄마 대신 형제들끼리 먹이를 구해올 때 동생들의 곁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았고, 위험에 처했을 때 동생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제비숲은 우리 봇제비들이 살기에 최적인 곳이다.

나무에는 수많은 열매와 가라아게가 열리고, 계곡에서 깨끗한 물도 마실 수 있는데다 농사를 지어서 수박을 마음껏 먹을 수도 있었다.

이렇다 보니 우리 봇제비들 뿐만 아니라 다른 결속동물들(키댕이, 니지토끼, 료냥이) 또한 이곳 제비숲에 들어와 구성원으로써 함께 지내기도 했다.

나는 이 평화가 계속되길 바랬다.

고통받는 일 없이 우리 가족, 친구들과 쭉 함께하고 숲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고먹는, 모든 순간이 행복한 그 평화 말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나날들이 정말 행복했다.

그래서 매일 밤마다 가족들과 별을 보며 함께 기도했다.

부디 우리 가족이 헤어지지 않고 쭉 함께할 수 있기를.. 나도 엄마도 동생들도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이 기도가 무색하게, 하룻밤 사이에 평화는 산산조각이 났다.

나와 가족이 동굴에서 자고 있는 사이 제비숲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난 것이다.

먼저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을 눈치챈 동물들은 다른 친구들을 깨우거나 불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동물들의 비명소리에 제일 먼저 잠에서 깬 나 또한 산불이 일어난 것을 보고 황급히 가족들을 깨워 대피하려 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가족들이 모두 동굴을 빠져나와 함께 피난을 떠났지만, 불이 붙은 나무 두 그루가 쓰러져 동생들을 덮쳐버렸다.

엄마와 나는 당황하며 어떻게든 동생들을 구하려 해봤지만 소용없었고, 동생들은 나무에 깔린 채 불길에 휩싸여 고통스러워하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세계평화아아아아!!! 세계평화아아아아아아!!!!!!"

엄마는 새끼들을 잃은 슬픔에 마구 울부짖으면서도 나라도 살리기 위해 날 안은 채 물이 있는 계곡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나는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토록 행복한 시간만 가득했던 세계평화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내린다고..?

그때 봇제비 몇십마리는 가볍게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화염이 우릴 덮치려 했고, 우리는 사면초가에 빠져버렸다.

이를 피할 방법이 없던 상황에.. 엄마를 나를 보며 말했다.

"세계... 세계평화...!!(살아야 한다... 반드시..!!)"

그렇게 화염이 우릴 삼키기 직전 엄마는 눈을 감으며 나를 최대한 끌어안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주위는 온통 불바다에, 곳곳에 있던 동족들과 친구들도 너무 많이 죽어있었다.

나는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엄마는... 홀로 화염에 휩싸여 온몸이 다 타버려 검게 변해버린 뒤였다.

"세계... 세계평화아아!!(엄마... 엄마아아!!)"

엄마까지 보낼 수 없었다. 모든 게 꿈이길 바랬다.

"엄마 죽으면 안돼.. 엄마아아... 흑흑"

결국 가족을 모두 잃고 그 자리에서 목이 터져라 통곡했지만 이것도 잠깐 뿐.. 계속되는 불길에 버틸 수 없던 나는 시체조차 가져가지도 못하고 숲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렇게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뒤늦게 도착한 소방대원들이 빠르게 불을 끄긴 했지만 숲은 모두 전소되고 말았다.

도대체 왜... 나 혼자 살아남은 걸까? 차라리 나도 죽어서 가족들의 곁으로 가고 싶었는데..

결국 나와 겨우 살아남은 동족들이 망연자실하며 소방차 옆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때에, 소방대원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쯧쯧.. 이 넓은 숲이 다 타버리타니 참.. 방화범은 잡혔대?"

"네. 방금 전에 체포됐는데 이런 진술을 했더군요. '봇제비들이 숲을 나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에 고의적으로 산불을 저지른거다' 라고..

뭐라고..? 이 산불이.. 자연현상도 아니고 인간이 직접 불을 낸 거라고...?
하... 제발...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하죠?"

"뭐 그냥 내버려둘 순 없으니 식당 같은 곳에 팔아남겨야지. 듣기로는 봇제비 이놈들을 보양탕으로 만들어서 먹으면 몸에 굉장히 좋다던데?"

"그게 낫겠죠? 돈이라도 최대한 벌어놔야지."

이들은 우리를 음식점에 팔아넘기려는 속셈이었다.

인간의 말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지능이 높았던 우리 봇제비들은 이를 빠르게 눈치채서 도망치려 했지만, 하필 달리는 속도가 너무 느렸기에 속수무책이었다.


"세계평화!! 세계평화!!"

"휴, 괜히 놀랐네.. 됐어. 불도 꺼졌고 녀석들도 다 잡았으니 이만 철수하지"

그렇게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동족들이 갇힌 우리를 차에 실은 소방대원들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나만 빼고..

나만 운 좋게 근처에 있던 수풀에 숨어있었던 덕에 인간들이  유일하게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현장에 남아있던 생물은 나 하나 뿐이었다.

동족들과 친구들은 대부분 불에 타 죽어버렸고, 겨우 살아남았던 동족들도 잡혀서 식당으로 팔려가버렸으니..

말로 설명하기 힘든 심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냥 동족들과 같이 잡혀서 끌려갔다면 깔끔하게 최후를 맞을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런거야..? 왜 그런거냐고!!!

이러면서 계속 자책하고 있던 와중, 엄마의 유언이 떠올랐다.

'살아야 한다. 반드시'

"........"

그렇다. 엄마는 나라도 살길 바랬다.

그러니까 몸 바쳐 희생하신 것 아닌가?

나까지 죽었으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버리는 거니까.

타버린 숲 근처엔 아무것도 없었다.

먹이도 구할 수가 없어서, 살아남으려면 인간들이 많이 있는 도시로 가야만 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제비숲은 이제 없다.

여기에 계속 있는다면 배를 채우지 못해 굶어죽을테고, 도시로 가면 인간들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어딜가나 위험한 건 똑같았다.

하지만 난 각오를 다졌다. 이 잔혹한 세상에서 최대한 살아남겠다고.

그렇게 나는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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