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치 더 락 마이너 갤러리
[🎨창작]
봇제비) 살아남기 위해 (中)
ㅇㅇ(218.232)
2025-02-22 17:24:48
조회 142
추천 10
상편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 대해서는 예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몇년 전 도시에 살던 한 인간이 제비숲에 들어와 봇제비 몇 마리를 포획해 세상에 소개했고, 이로 인해 우리 봇제비들의 존재가 많은 인간들에게 알려졌다.
이에 흥미를 느낀 인간 연구진들이 포획한 봇제비들을 인공적으로 번식시켜 개체수를 어마어마하게 늘렸다.
우릴 귀여워하며 집에 데려와 애완동물로 기르는 인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분홍색 가죽과 양질의 고기를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식재료로 쓰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를 너무 애호하는 인간들이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곳에다가도 우릴 널리 퍼뜨리려 하는 등 하도 뇌절을 해대서 혐오하는 인간들이 점점 늘기 시작했고,
이에 더해 봇제비라는 동물은 돼지국밥우동이 주식이라서 돼국우를 얻어먹으러 국밥집에 찾아와 털을 날려댄다는 이상한 프레임이 씌워져버렸다.
그래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우리 봇제비들을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해동물 취급을 하며 배척했다.
때문에 지금은 집에서 길러졌던 거의 모든 봇제비들이 사회적인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버려져 길고양이처럼 떠돌아다니는 신세다.
그 봇제비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길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든지 해서 먹이를 구하지만, 이를 두고 볼 수 없는 몇몇 인간들에게 폭력을 당해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까지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래도 최근 몇년 동안은 인간이 숲으로 쳐들어오는 일 없이 평화로웠다고 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라는 생각으로 살아온건데..
에휴, 지금 내가 이 떠돌이 신세다.
한 이틀 정도를 걸어 도시에 도착했다.
그동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고, 무엇보다 배가 너무 고팠다.
빨리 먹이를 찾아야지..
게다가 난 아직 성체도 아니다.
태어난 지 약 4개월밖에 안된 새끼였기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찾아야 했다.
결국 나 또한 인간들의 눈을 피해 그들이 먹다 버린 음식물 쓰레기나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이를 최대한 구하기 시작했다.
다 모아보니 양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디 이 정도면 한 끼 정도를 채우는 데는 충분하다.
"세계평화..."
잠은 그냥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
자다가 인간들에 의해 봉변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잠을 청해본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고, 나도 이제 어엿한 성체가 되었다.
그 몇개월간 인간들에게 계속 당하면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지금까지 식재료로 쓰이지 않고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생각될 정도다.
오늘 하루도 꾸역꾸역 버티면서 먹이를 찾고 숨어지내야하는 신세다.
마음속으론 한 명의 인간이라도 나를 입양해서 키워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받는 취급을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지.
이뤄질 수 없는 소원에 대한 생각은 접고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그때, 인간 몇 명이 나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오? 이거 봇제비 아냐?"
"맞네요 맞아. 용케 한마리 또 찾았네. 포획 준비하세요! 눈치채면 어떻게든 달려가서 바로 잡아내야 합니다!"
"세... 세계평화?!"
식당에서 일하는 부하 직원들로 보였다.
당황한 나는 부리나케 쓰레기통에서 빠져나와 필사적으로 도망쳤지만 결국 그물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되었다.
"세계평화! 세계평화!"
"됐어, 한마리 또 생포 완료. 이제 돌아ㄱ..."
'퍼억' "크아아아아악!!"
"뭐, 뭐야?!"
"크르르르..."
"너...이 녀석...!"
"세... 세계평화..?"
갑자기 나타난 키댕이 한마리였다.
직원 한 명의 팔을 발톱으로 할퀴고, 사나운 표정과 소리를 내며 날 지키려 하고있었다.
"이 개새끼가.. 당장 안 비켜?!"
"크르르... 크아아아앙!!"
"형님, 그냥 갑시다. 지금 이 친구 출혈이 너무 심한데.."
"흐윽... 흐으윽.."
"하 진짜.. 알았어! 가면 될 거 아냐!"
그렇게 인간들은 날 놔두고 떠났고, 키댕이는 나를 그물에서 꺼내주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는 됐어! 키댕이에게는 이
정도는 기본이라구!"
키댕이들은 사나운 늑대라서 그런지 제비숲에서도 다가가기가 어렵고 무서웠던 동물이다.
"근데 넌 어디서 온 거야? 도시 출신?"
"아뇨.. 제비숲에서 왔어요."
"제비숲? 인간에 의해 불타 사라졌다는?! 이럴 수가.. 그럼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야?"
"네.. 맞아요.."
".....이, 일단 같이 걷자!"
나는 키댕이에게 그동안의 일들을 다 털어놓았다.
제비숲에서 살다 산불로 가족과 친구들을 모두 잃은 일, 긴 시간 걸어서 이곳 도시에 온 일, 길에서 떠돌아다니며 위험하게 살아야 했던 일 등등..
"그동안 너무 고생이 컸구나.."
"인간이 정말 싫고 원망스러워요. 제가 이런 고생을 하고 다니는 것도 다 인간들 때문이니까요. 인간들은 다 잔인한 악마 같아요. 좋은 인간이 없는 것 같다구요.."
"흠... 꼭 그렇지만은 않아! 좋은 인간들도 꽤 많은걸? 그리고 네가 예전에 들었다는 말 있잖아, 반은 맞고 반은 거짓말이야."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 네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우리 같은 결속동물들이 배척당하는 건 이 도시에 한해서고, 다른 지역 인간들 대부분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거나 존재 자체를 아예 모르고 있어.
그리고 이 도시에서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단순히 좋아해주기만 하는 인간들도 정말 많고, 우리들을 병원에서 안전하게 보호하고 치료해주는 수의사라는 인간도 있거든."
"그... 그렇군요.."
"뭐 암튼, 이제 괜찮아! 내가 곁에 있을 거니까."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우리 키댕이들은 봇제비들을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사명을 갖고 태어난 존재거든. 너희 봇제비들이 끈임없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너 하나라도 지켜주고 싶어서 그래."
"하지만 저랑 같이 다니면 키타상도 위험해질 거에요."
"별 문제 없어! 우린 늑대라서 강하거든. 인간들이 쉽게 못 건드린다구?"
확실히 그렇다.
키댕이와 같이 다니면 외롭지 않고, 인간들과의 전쟁터에서도 안전할 것 같았다.
"그.. 그럼 잘 부탁드리게요.."
"맡겨만 달라구!"
그날 밤, 키댕이는 날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허억.. 헉.. 대체 어디로 가는 거에요?"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거의 다 왔어!"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한 하늘공원.
마지막 수풀을 지나자 눈에 보였던 건..
"우... 우와..."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어때, 멋있지?"
"네... 정말요..."
"난 여기 자주 와서 힐링을 느끼곤 해. 여기에서 야경을 구경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이를 보니 도시란 참 대단한 곳인 듯 하다.
내심 인간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런 멋진 곳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니..
"후아아... 정말 좋다..."
"우헤헤..."
하지만 지금은 나도 키댕이가 옆에 있다.
함께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이기에, 키댕이와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야경을 바라보다 갑자기 서로 눈이 마주친 우리.
"......."
"......."
뭐랄까.. 알 수 없는 신기한 감정이 밀려왔다.
이날 이후, 나와 키댕이는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
함께 먹이를 찾고, 위협하는 인간들에게 맞섰으며 잠잘 때는 서로를 보호한답시고 껴안고 자기도 했다.
몇달간 계속 같이 다니다 보니 우정이 싹트는 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게 우정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될 줄이야..
결국 키댕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키댕이도 나에게 연심이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사랑이란 감정에 한참을 방황하다, 어느 날 마침내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했다.
"조.. 좋아해요, 키타상...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고 싶어요.."
"나도야 히토리. 정말 좋아해"
"우헤헤..."
그렇게 우리는 계속 함께할 것임을 멩세하며, 진심을 담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고 보니 옆에 키댕이가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먹이라도 구하러 갔나?
궁금함을 참을 수 없던 나는 밖으로 나와 주위를 살펴보던 순간, 보면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세계평화!"
"키땅... 키따아아앙!!"
키댕이가 인간들에게 납치된 것이다.
"괜찮아, 해치려는 게 아니야!"
"키땅! 키따아앙!"
구하려 해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전용 우리에 갇혀 트럭에 실렸고, 트럭이 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토리이이이이!!!!!!"
"키타상.... 키타사아아아앙!!!!!"
그렇게 트럭은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가족에 이어 유일한 친구였던 키댕이까지 잃었다.
키댕이가 어디로 잡혀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인간들이라면 도축장 같은 죽음의 장소로 데려가겠지.
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건, 또 나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대체 왜.. 왜!!! 잡아갈거면 나도 같이 데려가던가아아아!!!!"
결국 나는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렸다.
살아갈 의욕조차 없고, 이젠 정말 죽고 싶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이 상황을 생각하기도 싫었다.
정말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랬다.
이후 몇주간 또 혼자서 떠돌이 생활을 하던 도중, 나에게 이상이 생겼다.
갈수록 점점 기력과 식욕이 저하되고 있었고, 성격도 이전보다 많이 예민해졌다.
심지어는 속이 메스꺼울 뿐더러 구토까지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배를 만져봤는데..
이때 알아버렸다.
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기쁨보다는 절망감이 컸다.
아이의 아버지인 키댕이도 죽었고,
나 혼자 살아남기도 힘든 마당에 뱃속의 새끼까지 지켜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태어날 새끼에게 이 지옥같은 세상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임신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
하지만 키댕이도 함께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갖고 만든 아이일 테니... 내가 뭐라고 할 순 없다.
하긴, 쩔 수 없지.
이미 지난 일은 돌이킬 수도 없고 말이다.
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뱃속에 있는 소중한 생명, 새끼의 유산만큼은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를 지키려 노력했지만
이 때문인지 공격해오는 인간들에게 이전처럼 반격하지는 못했고, 얻어맞는 일도 더 늘었다.
그래도 뱃속의 새끼만큼은 내 머리보다도 더 강하게 보호했다.
인간들의 발길질에 계속 당하며 고통받는 와중에도 배만큼은 건드리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다.
내 새끼, 절대로 못 건드린다.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