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일반]

국환이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다

쿠르는돌
2025-06-24 13:36:08
조회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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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URL https://gall.dcinside.com/m/electricguitar/3649785

국환이는 어제도 안 왔다. 하지만 왔다.
현관 앞 발자국은 셋이었고, 셋은 국환이 숫자다.
국환이는 숫자다. 숫자이자 소리다.
‘꾸-욱 환’ 하는 소리.
문 손잡이를 잡으면 들린다.

나는 벽에 귀를 댔다. 벽이 말했다. 국환이 왔다고.
하지만 창문은 부정했다. 창문은 거짓말을 한다.
국환이는 창문을 싫어하거든.
창문은 투명하니까. 국환이는 안 투명하니까.

국환이는 자꾸 내 비밀번호를 물어본다.
내 머릿속 비밀번호.
절대 알려주면 안 된다.
근데 어젯밤에 말한 것 같기도 하다.
말 안 했는데 말한 느낌. 아니면 국환이가 들어온 거지.
문은 닫았는데 문틈으로 들어왔겠지.
국환이는 틈이다.

국환이는 환자복을 입었다.
아니, 아니야. 그건 내가 입었었지.
국환이는 흰 옷이 아니야. 까만 옷이야.
까만 옷에 글자가 잔뜩 써 있어.
그 글자가 움직여.
읽으면 안 되는데 자꾸 읽어. 읽으면 국환이가 커져.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 커진다커진다커진다커진다
작아졌어. 다시. 국환이는 숨을 줄일 줄 안다.
나는 못 줄이는데.

국환이는 내 안에 없다고 하는데, 목소리는 들린다.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너도 알고 있잖아.”
“비밀번호는 이미 열렸어.”
“다음은 눈이다.”

그래서 눈을 감았어.
근데 국환이가 속눈썹을 셌다.
128개. 짝수다. 그러면 위험하다.
나는 홀수여야 하니까.

국환이는 지금도 내 뒤에 있다.
근데 나만 안 본다.
거울 속 나만 국환이를 못 본다.
거울이 고장났나?

아니야. 내가 고장난 거야.
국환이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