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정보]
봇제비로 이해하는 BBD 딜레이/모듈레이션
BBD(Bucket Brigade Device)는 과거 빈티지 모듈레이션 페달이나 아날로그 딜레이 이펙터들에 사용되었던 IC 칩임
이것보다 더욱 레트로한 방식으로는 아예 자기 테이프를 써서 구동하는 테이프 딜레이 같은 물건들이 있지만
BBD칩의 발명은 신호의 지연을 더욱 작은 사이즈에서 실현시켰기에 "컴팩트한" 딜레이, 모듈레이션 페달의 등장에 이바지했음
그럼 BBD칩이 사용된 모델에는 어떤 게 있을까?
롤랜드 JC-50 앰프의 코러스/비브라토 생성 회로에도 BBD 칩이 들어가 있고 (마츠시타 MN3004)
보스 최초의 페달인 CE-1 코러스 앙상블 회로에도 BBD 칩 (마츠시타 MN3002)이 들어가 있고
보스 DM-2 딜레이의 내부에도 이 BBD 칩(마츠시타 MN3205)이 들어가 있다. (아래에 MN3102도 BBD 칩임)
(DM-2는 초기형 모델은 MN3005를, 후기형 모델은 MN3205를 사용함)
이상하게 사용한 모델들이 일본 회사에서 만든 것들이 많다는걸 알 수가 있는데,
이건 마츠시타(현 파나소닉)가 BBD 칩의 최초 개발사인 레티콘으로부터 생산 라이선스를 받고 찍어낸 첫 생산분을 롤랜드, BOSS에서 대량으로 구매했었기 때문임
이후 단종될때까지 랙 마운트 딜레이나 코러스 이펙터, 노래방 기기 등 온갖 분야에 사용되었음
BBD 칩의 회로와 작동 원리 (feat. 봇제비, 니지토끼)
버킷 브리게이드 디바이스의 내부 회로를 그려보면 대충 이런 느낌임
대충 트랜지스터와 커패시터들이 일렬로 쭉 늘어선 구조라는거
근데 이따위로 그려놓고 퉁치면 전자과 졸업생들 아니면 아무도 이해를 못할테니 (나도 못함)
저 회로의 구성과 작동 방식을 간단한 그림과 움짤로 그려보며 이해해보자
봇제비들이 살고있는 오두막에 불이 났음
근데 물을 퍼올 수 있는 웅덩이는 저기 좀 먼 거리에 있어서
할 수 없이 봇제비들은 집에 있는 양동이로 물을 퍼와서 뿌리기로 했음
근데 양동이에서 물을 퍼다가 오두막으로 뛰어가서 뿌리는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뭣보다 뛰느라 빨리 지쳐서 장기적으로는 효율이 안좋으므로
열심히 머리를 짜낸 봇제비들은 웅덩이부터 오두막까지 쭉 늘어서서 양동이로 물을 옮겨받으면서 끄기로 함
이런 식으로
속도가 아주 빠르진 않았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물을 옮길 수는 있었음
근데 봇제비들이 열심히 불을 끄고 있다는 걸 들은 니지토끼가 급하게 와서 봇제비들을 도와주기로 함
니지토끼는 빠르게 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봇제비들처럼 일렬로 서서 물을 옮길 필요가 없었음
그래서 그냥 웅덩이에서 물 퍼다가 날아가서 오두막에 뿌리기로 함
그래서 봇제비들 여러 마리가 낑낑대며 물을 옮겨 담을때 혼자 훨씬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물을 뿌렸음
바로 이렇게
보다시피 니지토끼는 이렇게 혼자서 봇제비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물을 옮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줌
여기서 우리는 봇제비와 니지토끼가 "동시에" 물을 떴을 때, 오두막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짧은 건 니지토끼가 뜬 쪽임을 알 수가 있음
반대로 얘기하면 봇제비가 뜬 물은 니지토끼가 뜬 물에 비하면 훨씬 "늦게" 오두막에 도착한다는거지
이게 버킷 브리게이드 디바이스가 입력된 원본 신호를 지연시켜 출력하는 방식과 완전히 동일함
실제로 버킷 브리게이드(Bucket Brigade)라는 이름도 직역하면 "양동이 여단"이라는 뜻임
작동 방식이 불 났을때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물양동이를 주고받는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란거
BBD 칩의 기능과 이용
버킷 브리게이트 칩의 주요 기능은 방금 말한 것처럼 들어온 원본 신호를 어떤식으로든 지연시켜서 출력하는 것임
풀어서 설명하자면 어떠한 신호가 입력되었을 때 BBD 칩은 이 신호를 짧은 시간 저장, 혹은 지연해놨다가 훨씬 나중에 내보낸다는거
그래서 이걸 원본 신호와 어떤 방식으로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펙트 효과를 구현할 수 있음
1. 딜레이 - 지연된 신호를 원본 신호보다 50ms ~ 500ms 정도 늦게 출력함. 지연된 신호가 비교적 늦은 타이밍 후 출력되므로 메아리 치는 느낌의 사운드가 나옴
2. 코러스 - 지연된 신호를 원본 신호보다 10ms ~ 50ms 정도로 비교적 빠르게 출력함. 짧은 지연 시간으로 뒤에서 합창하는 듯한 풍성한 사운드가 나옴
3. 플랜저 - 지연된 신호를 원본 신호보다 1ms ~ 10ms 정도로 매우 빠르게 출력함. 이 정도로 빠른 시간 차는 원본 신호와의 위상 차이 정도로 짧기에 "슈우웅"하는 플랜저 효과가 발생함
보다시피 지연 시간을 조정해주기만 하는걸로 여러 이펙트 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데,
좋은 예로 일렉트로 하모닉스의 디럭스 메모리맨 같은 이펙터들이 딜레이 페달임에도 코러스 이펙트까지 탑재한게
하드웨어 구조상 두 효과를 하나의 기기에서 동시에 구현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임
이쪽도 실제로 내부에 MN3008 BBD 칩을 사용함
BBD 칩의 단점
물론 저런 BBD 칩도 단점이 없지는 않음
저렇게 신호를 계속 잡아두고 잡아두고 하는 방식이라 지연을 매우 짧게만 시킬 수 있음
그래서 원본 신호 재생되고 거의 몇초 뒤에 나오는 그런 엄청나게 긴 딜레이들을 만드는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거
근데 저건 자잘한 단점이고, 뭣보다 가장 큰 단점은 저렇게 순수 아날로그 방식으로 신호를 지연시키다보니 중간에 불필요한 노이즈가 끼어들기 쉽다는 점임
저 위의 봇제비를 사용한 예시에서는 6마리 정도만 나와서 열심히 물을 퍼날랐지만
실제 BBD 칩의 내부에는 저런 봇제비들이 거의 백마리 천마리도 넘게 있음
이건 실제 마츠시타 BBD 칩의 데이터시트인데,
저 위에 Number of BBD가 실제 칩 안에 들어가는 BBD 유닛의 갯수임
보다시피 제일 적은게 128개이고, 많은 놈들은 4096개까지도 들어간다는거
이로 인해 BBD 칩들은 고질적으로 지연된 신호에 고주파 노이즈가 섞일 수밖에 없는데,
엔지니어들은 이걸 해결하기 위해 BBD 칩에서 출력된 신호에 로우패스 필터(일렉기타 톤 노브에 들어가는 그거랑 똑같은 구조임)를 장착하여 저 고주파 노이즈를 전부 잘라버리는 식으로 제품을 설계함
그런데 이렇게 고주파 노이즈를 깎아버리니 이번엔 노이즈 뿐만 아니라 아예 원본 신호의 고음역대가 잘려나가서 먹먹해지는 사태가 발생함
원본 신호를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하는 문제나 다름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지금은 아날로그 테이프 딜레이들마냥 로파이 감성을 자극한다고 하여 지금까지도 BBD 이펙터들이 사랑받는 이유가 됨
단종과 그 대안
아쉽게도 저런 기기들에 사용된 오리지널 BBD 칩들은 현재 전부 90년대 초 쯤 단종되었음
저렇게 불안정한 아날로그 장비로 신호를 애매하게 지연시키느니 그냥 휘발성 기억장치를 넣어서 거기다가 신호를 저장하고 나중에 내보내는게 훨씬 결과물이 깔끔했기 때문임
이건 당시까지만 해도 시장에 나와있던 기억장치들이 전기도 많이 퍼먹고 단가도 꽤 비싸서 사용을 못하고 있었다가
1983년에 최초로 기억장치를 내장한 컴팩트 딜레이 페달인 보스 DD-2가 나오면서 처음으로 일반 소비자들 대상으로 상용화되었고,
기술 발전으로 기억장치들의 가격도 계속 내려갔던지라 빠르게 BBD 방식 이펙터들을 대체해갔음
90년대 이후 BBD 칩은 더 이상의 사업성이 없는 구식 칩이 되었으니 제조사들 입장에서도 더이상 이걸 생산할 이유가 없었던 것도 컸겠지
근데 2000년대가 지나니까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아날로그 테이프 딜레이와 함께 BBD 칩이 사용된 이펙터들도 수요가 엄청 커졌고
오리지널 BBD 칩을 복각해서 판매하는 회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함
가장 대표적인게 마츠시타 MN3205 BBD를 복각한 쿨오디오의 V3205SD 칩인데,
요근래 BBD 칩 복각 이펙터들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사용되고 있음
요렇게 잼페달 딜레이 라마에도 이 V3205칩이 사용된걸 볼 수 있고, (기판 좌측 하단부)
오리지널 DM-2 모델에서는 MN3205를 사용했었던 보스도 DM-2w를 만들땐 이 V3205를 사용했음
간혹 알리 등지에서 팔리는 좀 저가형 이펙터 브랜드에서 출시한 딜레이를 보면 이 PT2399 칩이 사용된것도 볼 수 있는데
얘도 딜레이나 그 외 모듈레이션 이펙터들에 사용되는게 맞긴 하지만 BBD 방식 칩은 아님
다만 BBD보다는 훨씬 딜레이 타임을 길게 잡을 수 있고, 위에서 말한 고주파 잡음도 거의 없는 편이라 깔끔한 디지털 딜레이 같은거 만들 때 많이 사용된다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