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일반]

기타가 삶의 목표로 적당할까?

예술가길드원
2026-01-29 04:00:47
조회 505
추천 23
원본 URL https://gall.dcinside.com/m/electricguitar/4136386





우리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나에게 넋두리처럼 말했다.


자기 인생은 실패했다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기 아들딸들을 모조리 서울대며 명문대에 입학시키고 막상 본인은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쳐 국가유공훈장에, 수십년 금융맨으로 은행에서 일하셨고 평생 한 여자와만 살았다.


무엇이 그를 실패한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렇게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그 이유에 대해서 더이상 말해줄 수 없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살아계실 때 모질게 대한 것을 후회하고, 그리워하시다 6개월만에 할아버지를 따라 떠나셨다.



내 아버지는 서울대를 졸업해 뛰어난 소아과 의사가 되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첫 결혼에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마저도 순탄치 않았지.



나는 아버지가 선택한 두 번째 결혼생활로 인해 인생이 나락 간 케이스로


아버지는 첫 아내와 나를 낳고 이혼한 후 재혼하며 계모에게 숨기고 정관수술을 했다. 장손인 나를 잘 키우려고 자식을 더 갖지 않으려고 했지.


하지만 계모에게 정관수술을 한 사실을 들키고 말았다.


의사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부부간의 신뢰보다 중요했던걸까? 가난했던 계모는 남편을 용서했고



아버지는 정관수술을 풀고 둘의 자식을 더 낳았다.




계모는 이 모든 배신감과 가정파탄의 모든 원인을 장손인 나로 돌렸고,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대략 3살때부터였을거다.


계모는 만화 속 짱구 유리엄마가 토끼인형을 패듯이 화가 날때마다 이유없이 나를 두들겨팼다.


그녀는 내게 침도 뱉고 발가벗겨 쫓아내기도 했다. 


모든 음식물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전에 나를 거쳤다.


경험해보지 못한 몽둥이가 없다.


탈출구가 없어 살자 시도도 해보았다.



9시 뉴스에 나오던 아동학대사건들을 보면 늘 내가 당한 것에 비하면 한수 아래였다.



두 번째 결혼생활의 실패가 두려워서였을까?


아버지는 이 모든 현실을 비겁하게 외면했고 나는 가정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이미 뭔가가 고장난 채로 21살이 되었고,


갑자기 임신한 여-친으로 인해 나는 갑자기 아빠가 되었다.



아이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상하차, 택배배송, 보험설계사, 레스토랑 서버, 돈만 준다면 뭐든지 했다.



그렇게 10년, 


답이 안보여서 외국인노동자로 미국으로 이민까지 갔다.




미국에서도 쉽지 않았다. 밑바닥 일을 전전하며 언어의 장벽과도 싸웠고 마침 코로나로 직장도 잃었었지.


나는 가정폭력에 노출되고 있던 시절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며 현실을 외면했었다.


그때 쌓인 기술 덕분일까? 운이 좋아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고


내가 그린 작품들이 꽤나 잘 팔려 35세가 넘어가며 어느정도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작은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나와 같은 아티스트들을 고용하는 사장이 되었다.




하지만 난 망가진 사람이다.


정상적인 가정을 본 적도 없는 내가 아빠가 되었으니 얼마나 아빠답지 못했을까?


최선을 다했지만 나의 최선은 남들의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고 스스로 판단할 줄 알게 되자 나를 외면했고,


아내는 아이들을 선택했다.


결국 이혼하기로 했다.




40살이 되고 갑자기 혼자가 된 나는, 10대 후반부터 쳐온 기타를 다시 꺼냈다.


크로메틱부터 시작해서 예전에 좋아하던 락 리프를 연주해보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취향도 달라져서 이젠 재즈나 블루스가 락보다 더 좋다.




지금 내 목표는 일주일에 두세번씩 뉴올리언스 재즈클럽에 출근해서 트럼펫 있는 밴드에서 기타맨으로 기타치고 받은 돈으로 어렵게 싸구려 원룸 월세를 내면서 사는 거다.


낮에는 계속 그림그려서 먹고 살고.


그렇게 살다가 60세 이후 어느 날 평소와 똑같이 기타 메고 펍으로 출근하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으면 완벽할 것 같다.




죽은 후엔, 내가 그린 그림 몇 점, 내가 연주하는 영상 몇개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세상을 떠돌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다가 죽으면 나는 성공한 인생일까?


아니면 나는 실패한 인생일까?




자신의 삶을 실패했다고 단정한 내 할아버지는 나의 삶을 뭐라고 평가할까?


부유한 노년을 보내는 것 이외엔 실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내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까


시작부터 망가진 채 살아가는 중인 내 삶은 고쳐질 수 있을까?



밤마다 찾아오는 가슴을 짖누르는 공황장애는 나를 강하게 만들까 약하게 만들까.


삶이란 무엇이고 삶의 목표란 무엇일까.


그 목표를 이룬다고 성공에 가까워지는걸까?


그 성공은 죽은 후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실패란 정말 그 말대로 그렇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걸까?



소소한 일상의 작은 행복들은 그 실제 행복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닐까? 아니면 실제론 아무 의미도 없을까?




모든 무거운 것들이 가볍게 떠다니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 무거운걸까?


정답을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붓을 한 번 더 들고, 기타를 한 번 더 쥐는 것 뿐이다.



다른 이들은 어떨까.


다들 나처럼 힘들까?


아니면 한 없이 편할까.


그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까.


궁금하다.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존fat루치
응원합니다
2026.01.29 04:10:51
Techbae
흡입력 보소 ㄷㄷ
2026.01.29 04:12:12
회피
2026.01.29 04:12:47
볼드애즈러브
기타가 어떤 종류의 위안이나마 되길 바랍니다 - dc App
2026.01.29 04:15:22
볼드애즈러브
뭘 주절주절 한참을 더쓰다 지웠네요 나이도 경험도 저보다 많고 글보니 이래저래 사연도 많았던분이라 대단히 덧붙일말은 없고 다만 건강하시길 - dc App
2026.01.29 04:19:31
블루칩피크요정
셀털 줄
2026.01.29 04:17:19
네토부나
세상에… - dc App
2026.01.29 04:17:28
ㅇㅇ
기타를 연주하면서 마음이 조금은 풀리기를
2026.01.29 04:21:30
일순이1 (39.120)
갑자기 교회를 다니더니 언제 학대했냐는듯 갑자기 착한척 하는 부모가 이해가 안되지만 난 능력도 돈도 없는 19살이니 계속 살고있음 길가는 할아버지들 잡아서 옛날이야기 들어보면 나보다 힘든 삶을 살았겠지만 그분들도 계속 살아감 난 그래도 행복한 노인이 되고싶음
2026.01.29 04:45:15
일순이1 (39.120)
죽기전엔 지금같이 조지같은 기분,기억들보다 행복한 기억의 힘이 더 크다면 그게 내 기준 성공한 인생일듯
2026.01.29 04:47:02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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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9 05:59:18
guv'nor
기타는 나를 찾는 항해의 키가 되어준다 - dc App
2026.01.29 06:07:15
나루미야
이미 충분히 멋진 삶이십니다
2026.01.29 07:09:14
339
클랩튼 아재도 20대엔 천재소리 듣다가 지미한테 벽느끼고 서른에는 복잡한 연애사, 약도 하고 블루스 노땅취급이다가 40대에 tears in heaven 냈잖아. 인생은 성공 실패 둘중 하나로만 볼순 없다 생각함 - dc App
2026.01.29 07:5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