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릭기타 마이너 갤러리
[일반]
밴드 구인 썰
취미밴드에서 기타친다
현재 밴드 구성은 남보컬 여보컬 기타1 기타2 드럼 건반 (베이스 구인중)
밴드를 하면 무수히 많은 썰이 쏟아지는데 그중에서 [구인]에 대한 썰을 풀어본다
우리 밴드는 동네친구나 음악학원동료 직장동료 등등과 같이 이미 알고있는 사람끼리 만난게 아니고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끼리 만들어진 밴드임
우선 베이스가 혼자서 나머지 포지션들을 구인하며 밴드가 탄생했다
이 베이스는 50대 중반의 큰형님이자 큰오빠였는데
처음으로 가입한게 기타1인 나다
세대가 다르니 음악성향도 꽤 달랐지만 형님이 그래도 젊은세대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최대한 인정해주는 편이라 함께하기로 마음먹고 다른 포지션들을 구했음
구인 포지션을 보컬/기타2/드럼/건반으로 잡았는데 건반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좀더 많은곡을 해볼수 있겠다 싶어서 일단 구인하기로 결정
근데 다들 알겠지만 구인글을 올리면 보컬만 연락이 엄청 오고 나머지는 연락이 없다
1. 첫번째 보컬 - 보컬하면 안 되는 보컬
간단하게 혁오의 톰보이를 가볍게 맞춰보기로 했다
일단 첫 음부터 혁오의 보컬과 달랐다
물론 첫 음을 잘 못잡는것은 아마추어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도 밴드 보컬에 지원할 정도면 기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런 경우 대부분 두세번째, 늦어도 네번째 음부터는 제대로 잡고 노래를 이어간다
근데 이 형은 아니었다
처음 잘못 잡은 음을 그대로 이어가며 다른 key와 다른 코드 위에서 목소리를 입혔다
약 10초 정도 가다가 우리가 연주를 중단하고 음을 잘못 잡은것 같다고 다시한번 해보자고 하고 재도전
달라진게 없다
세번째 도전
달라진게 없다
네번째 다섯번째 역시 달라진게 없었다
보컬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폰 녹음기를 켜고 여섯번째 도전을 1절까지 꾸역꾸역 마친 뒤 들려주니 말없이 외투를 입고 아무 말도 없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나갔다
그 이후로 이 보컬을 다시 볼 수 없었다
2. 두번째 보컬 - 악기는 노래방 반주라고 생각하는 보컬
역시 혁오의 톰보이를 맞춰보기로 했다
첫번째 보컬처럼 첫음부터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바로 원곡 음을 찾아 부르다가 갑자기 노래를 멈췄다
'난 엄마가 늘~' 에서 멈추더라
아 잠깐만요 노래가 생각보다 높은데 키좀 하나 낮추죠
마치 기타와 베이스의 노브를 돌리면 노래방 기계처럼 키가 낮아지거나 높아지는걸로 아는걸까?
내가 당황하니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이 나섰다
허허 보붕씨 키를 바꾸는건 우리도 따로 그 키에서 연습을 해야 되는거고 바로바로 그렇게 바꾸는건 힘들다구~ 일단 최대한 한번 불러보자구~
두번째 도전
'난 엄마가 늘 베푼 사랑에 어색~ 어후야'
저 도저히 안되겠어요 먼저 가볼게요
그 이후로 이 보컬을 다시 볼 수 없었다
3. 세번째 보컬 - 마이클 잭슨에 빙의한 보컬
오아시스의 돈룩백인앵거를 하고 싶다고 말한 보컬이었다
다행히 50대 중반인 베이스 형님과 내가 칠 줄 아는 곡이라 그걸로 가볍게 맞춰보기로 했다
그런데 너무나 놀라웠던 것은 이 보컬은 분명 다운펌과 디스커버리 외투와 갤럭시 플립으로 무장한 신토불이 한국인인데
중간중간 눈치를 슬금슬금 보더니 갑자기 마이클 형으로 빙의해 발끝서기 문워크 골반튕기기 등등의 춤을 선보이며 돈룩백인앵거를 불렀다
내가 눈앞에서 보는게 믿기질 않아서 코드 체인지를 계속 틀렸다
1절 이후 짧은 간주가 있는데 그 부분에서 잭슨형 특유의 '이~히' 를 족같은 음색으로 추임새를 넣다가 2절 들어가는 박자를 놓쳐 2절의 절반이 악기소리만 울려퍼졌다
돈룩백인앵거는 딱 한번만 연주되었다
보컬이 아 제가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네요 먼저 가볼게요! 하고 떠났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내기 전에 눈치껏 먼저 사라져준 보컬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이후로 이 보컬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일마갤 베갤 드갤 뮬 등등 수많은 밴드썰이 있지만 내가 단언하건데 이 마이클 잭슨 썰을 이길 수 있는 썰이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대략 10명정도 보컬이 왔다갔고 결국 정상적인 남보컬 여보컬을 한명씩 영입하는데 성공
다음은 기타였다
이 형은 어린 형이었는데 무려 고등학생이었다
톰보이와 돈룩백인앵거 그리고 아이묭의 마리골드가 우리가 뽑은 선곡이었는데 이 세곡을 모두 유튜브로 쳐 봤다고 해서 영입했는데
무난하게 잘 쳤다. 어린데도 싹싹하고 공부도 꽤 잘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놈에게도 문제가 있었으니
이 형에게도 선곡 하나 추천해보라고 하니 랩소디 스트라토바리우스같은 멜로디 화려하고 개빡센 스피드메탈을 고르더라
블랙 다이아몬드인가 개빡센거 있는데 그걸 고르길래 그거 칠 수 있냐고 물으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약 5초간 침묵하더니 드라우닝 하자고 말을 바꿨다
물론 드라우닝은 보컬이 컷했다
그래도 강퇴시킬 정도의 문제는 당연히 아니다
기타가 한번에 구해진 것은 큰 행운이었다
다음으론 건반이 왔는데 건반이 보통 가장 구하기 어려운 포지션임에도 빠르게 건반이 가입해줘서 매우 다행이었다
스펙은 음대출신에 음악학원에서 건반과 화성학 강사 경험. 악보도 오선보건 타브건 만들 줄 알고 건반이 없는 곡은 직접 편곡해서 건반을 연주한다.
대중음악은 물론 클래식 피아노도 오랫동안 쳐본 괴수인데 예쁘기까지 했다
마치 지미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밴드의 지미헨드릭스와 같은 존재다
나중에 왜 그런 실력으로 우리같은 쌩초보 밴드에 왔냐고 물어보니 합주 장소가 집에서 가까워서 왔다고 한다
신은 우리 밴드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신은 우리 밴드를 버렸다
이 언니의 문제는 전공자라 그런건지 귀가 너무 좋아서 멤버들이 합주중 실수를 하면 그걸 다 듣고 연주 종료 후 피드백을 하는데
물론 호통을 치거나 하는게 아니라 나긋나긋하게 말하는데 이게 살짝 지나쳐서 한 곡이 끝나면 피드백이 10분간 이어진다
보컬 기타 베이스를 모두 피드백하니 말이다
우리 모두 이 피드백 타임을 꽤나 피곤하게 느끼던 시점에 문제가 터졌다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이 어느 날 도저히 못 참고 네가 그렇게 음악을 잘해? 너 해고야 나가! 라고 질러버린 것이다
물론 이 '해고'는 다른 멤버들과는 전혀 상의없이 그냥 본인이 순간적으로 빡쳐서 내뱉은 말이다
우리 모두 당황하고 있는데 건반이 주섬주섬 짐을 싸길래 내가 중재를 좀 하려고 일단 물 한잔씩 하고 잠깐 쉬면서 다시 대화해보자~ 했는데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이 아직 분이 안 풀렸는지
야! 너는 나랑 같이 이 밴드 만들었는데 쟤 편이야? 너도 나가!
라고 질러버림
어이가 없었지만 저런 말을 듣고 계속 함께하기는 어렵다고 생각이 들어 나도 주섬주섬 짐을 싸는데
남보컬이 자 우리 오늘 합주는 여기서 끝내고 각자 좀 진정되면 메시지로 다시 얘기해보죠 라고 해서 그날 그렇게 끝남
나는 당연히 더 이상 함께할 생각이 없었고 혹여나 다시 간다 해도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에게 맞을까봐 쫄아 있었는데
어린친구인 기타2가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을 뺀 모두를 새 단톡방에 초대함
그 이후로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정확히 따지자면 남보컬 여보컬 기타1 기타2 건반이 나간 것이지만
만약 우리가 훗날 혁오 오아시스 아이묭같은 메이저 뮤지션이 된다면 세상은 우리가 나간 것이 아닌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이 나간 것으로 기억될테지...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 그대의 숭고한 희생으로 피드백 타임은 없어졌답니다 ㅠㅠ
이후 드럼도 대략 7명정도 돌아이 새키들이 왔다갔는데
모든 노트를 풀스윙으로 후려갈겨서 한 곡이 끝나면 10분을 쉬어야 다음 곡을 할 수 있는 놈도 있었고
(이때 피드백 타임 부활할뻔 했다)
합주실 드럼 상태가 별로네 뭐네 하면서 나사 풀고 조이고 튜닝이 어떻네 하다가 속 빈 깡통같은 소리로 만들어놔서 합주실 주인과 영상통화하며 복구시킨 드러머
드럼 치면서 코러스를 넣고 싶다고 해서 해보라고 하니 목 꽉 조인 듣기싫은 고음 (오래된 창문 열때 나는 끼익 소리) 으로 코러스를 넣어서 여보컬이 엄마야! 소리 나오게 만든 드러머
두곡정도 친 다음에 너무 더워서 그런데 웃통을 벗고 해도 되겠냐고 여보컬과 건반에게 양해 구하던 드러머 (쓸데없이 매우 정중하게 부탁함)
별별 놈들이 다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역시 마이클 잭슨이었고 건반에게 호통치던 50대 중반의 베이스 형님도 기억에 남는다 ㅠㅠ
다음 합주때 새로운 베이스가 오기로 했는데
실력은 정말 중요하지 않다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붕이들의 밴드에도 정상인들이 모이길 바라며 글 마침